기능주의라는 이론은 우리가 배우는 주제와도 뿌리를 같이합니다. 앨런 튜링은 그의 유명한 연구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그로부터 10년 후 힐러리 퍼트남이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제안한 논변이 기능주의의 원형입니다. 특히 기능을 진화의 역사와 결부시켜 설명하는 이론을 목적론적 의미론이라 합니다. 이를 통해 마음과 인간의 정신을 초자연적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 설명해낼 수 있기에 자연주의 철학으로 간주하기도 하죠.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표상이라는 개념의 발견과 정의는 현대 인지과학의 위대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는데요. 우리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어떤 신호가 어떻게 외부의 대상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 원리를 규명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오랜 과제였습니다. 표상의 그러한 성질을 지향성이라고 하는데요, 지향성에 대한 계속된 탐구는 20세기 대륙철학에서 현상학과 실존주의라는 거대한 철학 사조를 낳기도 합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이 느껴졌다면, 단순하게는 표상이란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어떤 관념적인 대상의 물리적인 실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인간의 머릿속에서는 뉴런들이 주고받는 전기 화학적인 신호가 표상인 셈이죠. 그러한 표상, 내지는 표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하게 된다면 사실상 인간의 정신을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딥러닝의 또 다른 이름이 표상 학습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겠죠.